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유쾌하고 기상천외한
안녕하세요, 스민밤입니다.
지난번 크리스마스 추천 영화 리스트에 들어갔었는데, 한번 더 자세히 리뷰할까 합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입니다.
개봉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보지 않던 영화입니다. 제목과 포스터만으로는 도저히 어떤 내용일지 추측이 전혀 되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 수많은 매체에서 추천 했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전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탓 입니다. 제가 안 봐서 무슨 내용인지 모를 때 사람들이 열광하면 더 관심이 없어지는 탓 입니다. 다행히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 스포일러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쁩니다. 있는 그대로 저만의 감상을 가질 수 있어서 조금도 관심 안 가진 과거의 저에게 감사할 지경입니다.
아무튼 보고 난 후 감상은, 역시 사람들이 재밌다, 재밌다 할 때는 역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추천할 때는 그냥 보는 게 답이다...이었습니다. 너무너무 정말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최근 본 영화 중에 트윈스터즈와 함께 저만의 영화 순위 투탑 입니다. 제목이나 포스터를 봤을 때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겨서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 일거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제 관점에서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굉장히 유쾌하고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 아래 글 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젊은 작가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지내던 중 호텔의 주인인 미스터 제로 무스타파에게서 그가 어떻게 이 호텔의 주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가 단골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사를 당하게 되고, 유력 용의자로 호텔 지배인 무슈 구스타브가 지목 받게 됩니다. 그는 충실한 호텔 로비보이 제로와 함께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 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첫번째 특징은 배우 캐스팅이 아주 화려하다는 것 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쟁쟁한 배우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단역 정도로 짧게 스쳐지나가기도 해서 이 배우가 이런 역할을? 하고 놀라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마블의 어벤져스 1편 이후 이게 가능한 캐스팅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배우는 역시 무슈 구스타브 역을 맡은 랄프 파인즈인데, 목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누군가 한참 생각하느라 초반에 영화에 집중을 못할 정도였습니다. 정체는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볼드모트 역 배우 입니다. 그리고 아가사 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 역시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라서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두번째 특징은 액자식 구성인데,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있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이 액자식 구성이 1, 2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처음에 어떤 사람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책을 열어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 책을 쓴 작가의 이야기, 그리고 그 작가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 젊은 시절의 작가에게 호텔 주인 제로 무스타파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등장인물들에 의해 끊임없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갑니다. 이 형식이 영화의 독특한 느낌을 더욱 살려줍니다. 마지막에는 처음의 책을 닫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세번째 특징은 영화 특유의 예쁜 색감과 화면구성 입니다. 특히 핑크색과 하늘색이 아주 쨍하니 예쁘게 나옵니다. 색감만으로도 독특한 분위기에 일조하는데 중간 중간 화면비가 바뀌고 때에 따라 흑백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유쾌하고 더 재밌게 느껴집니다. 색감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할 정도 입니다.
카메라 워크도 다양하고 독특합니다. 주로 정면 샷이 많이 나오는데 정면으로 찍었을 뿐인데 반복되어 나오니 오히려 옛 영화 느낌도 나면서 독특한 느낌을 내는 것 같습니다. 화면이 미끄러지듯이 돌아가는 형식도 많이 나오는데 멀리서 혹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벽 같은 곳을 비추다가 인물을 비추기도 하고 필요한 장면들을 위트 있게 보여줍니다.
배경음악도 재밌습니다. 극적인 장면에서 일부러 과장된 듯한 음악을 사용하는데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인데도 배경음악 때문에 오히려 장면을 희극적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저에게는 포스터의 인상이 무척 강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영화가 정말 그런 느낌을 주게끔 만들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인상이 인물들이나 이야기에 들어가서 보는 것 같은, 다양한 경험을 느끼게 하는 그런 입체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아날로그 적이고 평면적인 느낌이 많이 듭니다. 액자에 걸린 그림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에서만 국한된 이야기 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다양한 배경이 나와서 의외였고 그래서 더 재미있습니다. 특히 마담 D의 저택이 개인적으로 아주 맘에 들었는데, 세계적인 부호답게 정말 호화스러운 집이었습니다. 특히 육중하고 중후해 보이는 나무소재로 된 벽이나 기둥 등이 정말 고급스러워 보여서 얼마나 부자인지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본 영화 중에서 그렇게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인상적이었던 집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좋은 집이네, 궁전이네, 화려하네 정도의 집은 많이 봤지만, 정말 그 집은 고급이라는 느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서지와 수도원의 고해실에서 드디어 마주하는 장면과 호텔에서 아가사가 쫓기는 장면 그리고 호텔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장면 입니다. 특히 마지막 총격전 장면은 누가 누구에게 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무턱대고 끊임없이 총을 쏴대는데 아무도 맞는 사람이 없는 그 장면이 최고의 코미디 인 것 같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누군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이야기 하고, 인터넷 검색하면 미스터리, 모험이라고 되어있지만, 저는 유쾌한 블랙코미디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단 한부분도 유쾌하지 않은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강력 추천 해드립니다.
+편집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영화 포스터도 눈여겨 보는 편인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본문에 썼듯, 티저 포스터(오른쪽)만 봤을 때는 색감이 예쁜 호텔인가보다 라는 생각만 들뿐 별다른 감흥은 없습니다. 메인 포스터(왼쪽)는...그냥 저 많은 등장인물이 호텔 투숙객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 포스터가 다르게 보입니다. 그저 평화로운 호텔의 전경일 뿐이지만 그 위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등장인물들이 겹쳐보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림 하나를 보고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는 것처럼 말 입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이 들도록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 같습니다. 영화 스토리와 연출, 소품, 공간 등등 어느 하나 예술적이지 않은 것이 없는데 이 포스터가 그 시작과 끝을 완성하는 느낌이 듭니다.